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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서 요약본

제3편 그리스도인의 삶
신경이 고백하는 바를 성사가 전달한다. 실로 여러 성사로써 신자들은 신앙을 통하여 맞아들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새 생명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그리스도은총성령의 선물들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성 대 레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불멸의 영혼이성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하느님을 향하고, 또 그 영혼육신과 더불어 영원행복에 부름 받고 있다.
인간은 그를 하느님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그리스도은총에 힘입어 참행복에 이른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의 행복 선언에서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당신 제자들에게 밝히신다. 그리스도은총은 올바른 양심에 따라 진리와 선을 찾고 사랑하며 악을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작용한다.
참행복은 예수설교의 핵심이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이후 시작하신 약속을 반향하고 완성한다. 참행복예수님의 참모습을 묘사하고 그리스도인의 참삶의 특징을 나타내며, 그 행동의 궁극 목표 곧 영원행복을 밝혀 준다.
예수님께서 밝히신 참행복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께 이끄시고자 그 마음에 이 갈망을 심어 주셨고, 하느님만이 채워 주실 수 있는 본질적인 행복에 대한 갈망에 부응한다.
영원한 행복은 우리가 언젠가 충만하게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2베드 1,4) 되며, 그리스도영광을 보고 성삼위생명을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 안에서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 이 행복인간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고 또 그곳으로 이끄는 은총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초자연적인 선물이다. 이 약속행복은 우리에게 모든 것 위에 하느님사랑하도록 자극함으로써, 세상 재화에 대하여 확고한 도덕선택을 내리도록 촉구한다.
자유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을 하거나 또는 저것을 하는 능력이고, 따라서 스스로 숙고해서 행동하는 능력이다. 자유인간 행위의 고유한 특징이며,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최고의 선이고 우리의 참행복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완전하게 된다. 자유는 선과 악 사이의 선택 가능성도 포함한다. 악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남용이며 죄의 종이 되게 한다.
자유는 인간이 행위의 자발성에 따라 자기 행동에 대하여 책임지도록 한다. 어떤 행동에 대한 인책성(引責性)과 책임은 무지, 부주의, 폭력, 공포, 무절제한 감정과 습관들 때문에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의 고유한 권리다. 따라서 이 권리는 특히 도덕적, 종교적 영역에서 항상 존중되고 또 공동선과 공공질서의 범위 안에서 국가법으로 인정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의 자유는 최초의 죄로 말미암아 약화되었다. 자유는 이어지는 죄들로 말미암아 더욱더 심하게 손상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갈라 5,1) 주셨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자유를 가르쳐 주시어 교회세상 안에서 당신 사업의 자유로운 협력자가 되게 하신다.
인간 행위의 도덕성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선택된 대상 곧 참된 선이나 그렇게 보이는 것, 의도하는 목적이나 의향, 곧 목적을 통한 인간 행위의 지향, 결과들이 포함되어 있는 행위의 정황에 따라 좌우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되려면 대상과 목적과 정황이 모두 선해야 한다. 의향이 선할지라도 선택된 대상은 그 자체로도 행위 전체를 그릇되게 할 수 있다. 선한 의향으로 행한 악한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악한 목적은 행위의 대상 자체가 선하더라도 그 행위를 타락시킨다. 목적이 수단정당화하지 못하므로, 선한 목적은 그 대상 때문에 악한 처신을 선한 처신이 되게 하지 않는다. 정황은 행동하는 사람의 책임을 완화하거나 증가시킬 수도 있지만, 행위 자체의 도덕성을 변질시킬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악한 행위는 결코 선한 행위가 되게 하지 못한다.
선택된 대상(예를 들면 신성 모독, 살인, 간통)은 그 자체로 행위를 부당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선택에는 무질서한 의지, 곧 윤리적 악이 포함되어 있다. 선한 결과를 얻으려고 악을 행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감정은 인간 심리의 자연적인 요소로서, 선한 것으로 또는 악한 것으로 느끼는 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게 하는 애정이나 정서 또는 감수성의 움직임이다. 주요한 감정들은 사랑과 증오, 욕망과 두려움, 기쁨, 슬픔, 분노다. 가장 근본적인 감정은 선에 대한 이끌림에서 일어나는 사랑이다. 사랑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참되거나 확실한 선밖에 없다.
감정은 감수성의 움직임이므로 감정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감정이 선한 행동에 이바지할 때에는 선하며, 그 반대 경우에는 악하다. 정서와 감정들은 덕행 안에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는 악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양심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적절한 때에 인간에게 명령하는 이성의 판단이다. 양심을 통하여 인간은 자기가 하려는 행위나 이미 행한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알 수 있다. 그 양심이 인간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양심에 귀 기울일 때에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양심의 정직성을 내포한다. (곧 이성과 신법에 따라 정당하고 선한 것과 일치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 자체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기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요받아서도 안 되고, 특히 종교 문제와 공동선의 범위 안에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데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바르고 진실한 양심은 교육을 통하여 또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형성된다. 양심은 성령의 선물에 힘입어,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의 조언으로 도움을 받는다. 나아가 기도와 양심 성찰도 도덕심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세 가지 일반적인 규칙이 있다. 첫째 선한 결과를 얻으려고 악을 행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것, 둘째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 7,12) 하는 황금률, 셋째 사랑은 항상 이웃과 그 양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같은 존중이 객관적으로 악한 것을 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지 않더라도 그러하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양심의 확실한 판단을 따라야 하지만 그릇된 판단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그릇된 판단이 개인적인 죄의 책임을 늘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고의가 아닌 무지로 말미암아 개인이 저지른 악에 대한 책임은 그에게 물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행위는 여전히 객관적으로 악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에서 양심을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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