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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견진성사   *  해당분류에는 총 19건 의 FAQ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견진성사는 어떤 성사인가요?
견진성사는 세례받은 신자가 받는 성사로서, 주교의 안수와 축성 성유의 도유를 통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 성사입니다. 여기서 성령의 은혜란 무엇보다도 세례를 인준하고 세례의 은총을 굳건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즉,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굳건하게 해주고 증대시킵니다. 교황청의 주도하에 전세계 교회를 위해서 1992년 발행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세례성사의 은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세례의 효과 또는 세례의 은혜는 풍요로운 것이다. 이 은총으로 세례받은 사람은 원죄와 모든 본죄가 사해지고, 성부의 양자, 그리스도의 지체, 성령의 성전이 되어 새롭게 탄생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1279항). 견진성사는 바로 이런 세례의 은총을 성장시키고 심화시킵니다. 그래서 위의 교리서는 견진성사의 효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견진성사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욱 더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굳게 결합하게 하며, 성령의 선물을 증대시키고, 교회와의 유대를 더욱 튼튼하고, 교회의 사명에 더욱 깊이 참여케 하며, 말과 실천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하도록 도와준다" (1303, 1316항 참조). 이런 맥락에서 견진성사를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한 성사''라고도 합니다.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있나요?
견진이 세례와 밀접히 연관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보통 견진을 세례와 함께 한 번에 거행했습니다. 3세기 초에 저술된 <사도전승>에 의하면 세례성사는 부활 성야에 모든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여러 단계로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세례자들이 수세를 받은 직후에 사제는 그들에게 기름을 바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례를 받은 세례대에서 성당으로 들어옵니다. 주교는 그들에게 안수를 하고, 이마에 성유를 바르고, 십자 표시를 하고 나서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이어서 성찬 전례가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세례성사를 완성하는 두 번째의 도유와 안수가 견진성사를 의미하지요.
* 히폴리토의 <사도전승>에 나타난 세례 예식
1) 세례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3년 동안 예비신자로서 교육을 받는다. 그 기간이 지나면 예비신자로 있는 동안의 생활에 대해 심사하여 세례받기에 합당한 사람을 선출한다.
2) 이들은 세례받기 전날 한곳에 모이고, 주교는 악령이 그들을 떠나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구마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이들은 밤 내내 깨어 있으면서 성서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다
3) 닭이 울 시각에 세례를 축성하고, 세례받을 사람들은 옷을 벗는다.
4) 주교는 세례자들을 위해 사용할 ''구마의 기름''과 ''감사의 기름''을 축성한다.
5) 세례받을 사람이 각자 마귀를 끊어버리겠느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면, 부제는 그에게 ''구마의 기름''(오늘날 ''예비신자 성유''에 해당됨)을 발라준다.
6) 이들은 세례를 받게 될 물 옆에 서 있는 주교나 사제에게 인도되어 함께 물에 들어간다.
7) 세례 집전자는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느냐고 묻고, 세례 지원자는 매번 "나는 믿나이다"로 대답한다. 대답이 끝날 때마다 머리를 물에 담근다.(침례).
8) 사제는 침례가 끝난 사람에게는 기름을 발라주고 옷을 입게 한 다음 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9) 성당에서 주교는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안수를 하고, 이마에 성유를 바르고, 십자 표시를 한 다음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그런 다음 그곳에 모인 신자들과 함께 성찬 전례를 거행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본당의 수효가 늘어나 교구가 커지게 되자 주교가 모든 세례성사를 집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도유와 안수를 주교에게 유보해 두려고 이 두 성사를 시간적으로 분리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두 성사가 아주 밀접한 연관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견진성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 성체성사와 함께 ''그리스도교 입교성사''의 하나이며, 이 입교성사들의 단일성은 지켜져야 한다"(1285항). 이 단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견진 예식중에 세례 때에 서약한 것을 다시 한 번 갱신하게 되고 미사 중에 견진성사를 집전합니다.
견진은 세례와 어떻게 다른가요?
견진은 세례를 완성하고 확인하는 성사입니다. 그러면 견진이 세례와의 밀접한 연관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1303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견진성사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히 고백하고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해준다." 물론 세례성사를 통해서도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은혜를 받지만 견진성사는 이 은혜를 더욱 증가시키고 견고하게 합니다.

이러한 것은 신약성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 하시면서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요한16,12-13).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게 되어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힘으로써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용감하게 선포하는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을 끝까지 따르고자 했으나 막상 그분이 체포될 위험에 직면하자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모두 도망쳐버립니다. 제자들 중의 으뜸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는 요한 복음 20장 19절의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이 전하는 바와같이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은 이런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용감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특별한 능력으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깨달은 바를 두려움 없이 선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으로 견진성사를 통해서 성령의 일곱가지 은혜가 주어 진다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란 슬기, 의견, 통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 입니다. 요약하면, 이미 세례 때 받은 성령의 선물이 강화됨으로써 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하게 공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 견진성사의 특성입니다.
견진은 꼭 받아야 하나요?
역사적으로 세례와 견진이 그리스도교의 입교성사에 속하고, 견진은 세례의 완성과 확인으로서 세례와 밀접한 연관을 이룬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견진성사는 꼭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견진성사를 받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교에의 입교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에의 입교가 완성되기 위해, 다른 말로 하면 신앙 성숙을 위해 견진성사는 분명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신체적, 정신적인 성장이 있듯이 신앙에도 성장이 있습니다. 비유로 얘기하면 세례를 통해서 신앙의 씨앗이 심어졌고, 그 씨앗은 싹트고 튼튼하게 자라나야 합니다. 뿌려진 신앙의 씨가 싹트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견진성사입니다.

혼인성사 때 신랑과 신부는 일생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단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거듭해서 결혼 때의 약속을 확인해야 하고 이에 대한 재결단이 요구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 존경, 신의의 약속이 굳어지고 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신앙의 충실을 약속했지만 우리의 나약함과 소홀함으로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견진성사를 통해 세례 때의 결단을 새롭게 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주어진 소중한 은혜를 다시 확인하며 강화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또한 유아세레를 받은 사람들에게 견진성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견진을 받을 수 있는지요?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분별력을 갖출 나이''가 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있습 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분별력을 갖출 만한 나이를 만 12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세례를 받은 경우에는 즉시 견진성사를 받고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교회법 제866조 참조).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보통 신자 재교육의 차원에서 이런 경우에도 시간적 간격을 둡니다. 얼마만큼 시간적 간격을 두어야 하는지 정확한 규정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세례를 받은 지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 견진을 받습니다.
견진성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견진성사 준비를 위해서 얼마 동안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교구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대교구는 견진 준비기간을 2개월 이상으로 규정하면서, 신자 재교육을 위해 이 기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과 신약성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 대구대교구에서는 9일 동안의 기도와 교육으로써 견진성사 준비를 합니다. 광주대교구에서는 교구 차원에서의 일괄적인 지침은 없고 각 본당의 특성에 맞게 견진 준비를 합니다.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준비로는 그에 합당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견진성사를 받기 전에 고해성사를 받아 죄를 깨끗이 용서받아야 합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신약성서에 보면 성령을 받기 전에 항시 기도하는 자세를 갖추었음이 드러 납니다. 루가 복음 3장 21절부터 22절까지에 의하면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고 계실 때 홀연히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그분에게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14절과 2장 1절에 의하면 오순절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마음을 모아 기도에 힘쓰는 동안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는 풍부하고 강력합니다만, 이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보름달이 아무리 휘영청 밝다 해도 연못의 물이 잔잔할 때에만 수면에 보름달이 비칠 수 있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마음을 열어보이는 기도의 자세에서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견진성사를 그저 ''통과의례''나 ''자격증을 얻는 과정''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성사를 통해서 진정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싶다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서 마음 모아 조용히 기도하며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견진성사를 통해서 받은 성령의 특별한 은혜는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두려움 없이 증거하고 전파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짐이 아니라 기쁨으로 느껴져서 남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그 열매를 통해서 확인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의하면 성령의 열매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어느 누가 스스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런 열매를 드러내지 못하고 잘난 체 하거나 자주 분쟁을 일으키고 시기, 질투 속에 산다면 실제로는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의 은혜는 여러 가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1서 12장 8절부터 11절까지에서 다양한 성령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견고한 믿음, 병 고치는 능력, 기적을 행하는 능력, 하느님 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 등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가 다양한 만큼 어느 하나만 성령의 은혜라고 고집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받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는 모든 신자들이 이상한 언어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1고린 14,5). 그러나 이상한 언어를 해석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말고 혼자서 말하거나 하느님하고만 말하라고 분명히 제한을 둡니다(1고린 14,28). 왜냐하면 성령의 선물은 궁극적으로 교회를 돕는 것이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눈에 띄는 은혜에 집착하기보다는 교회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은혜를 구하는 것이 신자다운 태도일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예언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환자나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는 이들에게 조상 중에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연미사를 몇십 대씩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질병과 우환의 원인을 조상에게 두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기보다는 무속이나 미신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의 특색은 공동체와 함께하기 보다는 혼자서 치유기도를 한다고 다니거나, 점쟁이처럼 과거의 일이 어떻다고 짚어내려 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런 이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세례 때 지은 세례명을 견진 때 바꿀 수 있나요?
세례 때 지은 세례명을 바꿀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교회법상 규정은 없습니다. 일반 사회의 통례에 의하면 중대한 이유가 있을 때 법원에 정정 신청을 해서 이름을 바꾸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가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는 경우에 법원의 허락을 받아 호적에 기재된 이름을 변경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으면 세례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교적은 물론 다른 부속 서류를 모두 정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릅니다.

세례명은 성인들의 이름이나 성서의 인물을 택합니다. 세례명으로 선택되는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로서 적어도 그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세례명을 바꾸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세례명을 바꾸기 전에 과연 세례명으로 선택한 성인의 정신을 올바로 따라 살고자 노력했는가, 혹여 그저 겉보기에 독특하고 예쁜 것을 찾아서 이것저것 자주 바꾸는 현재의 유행풍조에 암암리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세례명에 다른 성인의 이름을 덧붙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서 요한 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사람을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덧붙여서 ''요한 바오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그저 일시적인 기분이나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그 성인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진지한 각오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부모를 새로 정해야 하나요?
견진성사 대부모를 새로 정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례 때의 대부모가 견진성사의 대부모가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두 성사의 단일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모의 임무는 견진성사를 받는 사람의 내적,외적인 준비를 도와주고, 주교님이 도유할 때 대자, 대녀 옆에서 증인이 됩니다. 또한 대자, 대녀가 성령의 은혜 속에서 기쁘게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것이 다른 이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이루어지듯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도 다른 신앙인의 관심과 도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대부모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부모는 그저 견진성사 때만 필요한 사람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지속적으로 대자, 대녀에 관심을 기울이고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 주교님이 견진 주례를 하시나요?
견진성사를 통해서 받는 은혜 중에는 교회와의 유대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모든 신앙인들이 모인 공동체이지만 주교님이 그 대표자입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님이 신자 공동체와 함께 성찬례(미사)를 거행할 때 교회의 모습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주교님의 견진집전은 견진성사가 교회와의 유대를 강화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이렇게 교회와의 유대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서 견진성사를 주교님에게 유보한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신자에게는 사제가 견진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 중의 어느 누구라도, 아주 어린아이까지도,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선물로 완전해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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